좀비영화 중에 여운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건 28일 후

 

28일후를 보면서 아, 어쩌면 사회나 국가의 존재가치는 약자 보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. 여기에서 <28일 후>는 여타 좀비물과 명확히 선을 긋는 게 아닐까.

 

국회가 테러방지법을 만들면서 민간에 군을 투입할 수 있게 법을 개정하는 현실은 여긴 이미 국가나 정부가 그 존재가치를 상실한 기이한 비현실 속이 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.

 

이 영화에서 좀비에 대항하는 힘(=무력)을 쓸 수 있는 세력이 군인데, 이 군부대가 민간인을 불러모으기 위해 무선 방송을 한다. 그렇게 이곳을 찾아온 부녀와 남녀 중 어처구니 없이 소녀의 아버지가 좀비가 되고 마치 좀비가 되길 기다리기라도 한 듯 군인이 나타나 소녀의 아버지를 총살한다. 10초도 안 걸린 것 같다. 이 영화의 연출이 진부하다며 짜증냈던 부분. 아니 조금만 더 일찍 나타나면 되는 거 아닌가. 이 정도 속도면 지켜보고 있었단 말인데, 왜 얼른 나타나서 무사히 우리 부대까지 찾아왔다고 말해주지 않았지? 하는 의구심이 드는 장면이다. 그러나 그 이유는 영화가 조금만 더 진행되면 바로 알 수 있다.

남자, 그 중 특히 아버지는 군인들에게 매우 불편한 존재였던 것이다.

티끌만큼 남아있는 인간성 때문에 사람으로는 못 죽이고 좀비로 만들어 이 때다 싶어 해치우는 '명'장면이다, 이 장면.

 

이렇게까지 쓰면 영화 안 본 사람도 아마 감 잡을테지.

 

부대장은 이런 말을 한다.

온세상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고 자기들만 살아남으면 거기에 희망이 있는 거냐고.. 그래서 부하들에게 여자를 약속하고, 여자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방송을 했다고 실토한다. 변명한다. 그게 그 사람들의 희망이다. 이 세기말은 강간이 곧 미래이다. 강간으로 태어날 자식이 우리의 미래라고 감히 말하는 것이다.

 

무력은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다. 무력은 군림하고 괴물같은 희망을 찾아낸다. 정상적인 사회라면 그런 걸 두고 절대로 희망이라 말하지 않는다. 엄연한 범죄이지만, 군이라는 사회에서는 그게 법이고 그게 정의가 되는 것이다.

 

군을 민간에 투입할 수 있는 유사계엄이 합법화 되면 아마 우리는 정부와 군과 몇몇 기업에 유사 강간당하게 될 것이다.

약자 보호라는 기본 가치를 버린 사회나 국가가 과연 국가일까? 존립 가치가 있는 것일까?

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회를 이루고 국가를 만든 것일까.

 

사회가 무너진 28일 후 좀비 세상에서 여자를 강간하는 것만이 희망이라 말하는 군인들과 뭐가 다른 걸까?

 

 

 

Posted by 레일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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